기적의 이야기 <만화 나비효과> 작가 에센티 님의 감동 실화. 기적의 이야기


언젠진 모르겠지만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두개골에 금이 갔지만 어린애라서 괜찮겠지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서 뜬금없이 목이 돌아갔습니다.
몇 시간만에 다시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머리가 많이 아팠습니다.
정확히 언제부턴진 모르겠습니다.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아프다고 하면 더 좋은 수가 있었을 텐데
그땐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머리 아프다고 할 때마다
어른들은 누구나 다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나도 어른이 되고 있어서 아픈 거겠지 하고 말았습니다.

14살엔 집이 망했고 그때부터 한참을
친척 집에서 가족도 없이 혼자서
매일을 외로워 하며 슬퍼 하며 괴로워 하며 지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때의 심한 스트레스가
머리에 직접적으로 안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16살엔 비보이였고 머리를 사용하는 춤을 꽤 많이 췄습니다.
당시엔 그저 젊단 걸 자랑하고 싶은 건지
미련하게 헤드스핀마저 헬멧을 착용하지 않고 연습한 적이 많은데
그게 머리에 상당히 안좋았던 것 같습니다.

눈에 초점이 맞지 않기 시작한 게 가을 쯤인데
안경을 새로 사면 된다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눈이 늘 뜨겁고 무겁고 빠질 것만 같이 아파서
평소에 좋아하던 만화책도 안 보기 시작했습니다.

11월부턴 머리가 깨질 만큼 아팠는데
당시엔 이가 안좋고 머리랑 입은 가까우니
그냥 그게 치통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의 말이 제대로 이해가 안된 건 그 전부터였는데
11월 중순부턴 아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내 맘대로 표현이 안됐습니다.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머리에 들어있기까지 해도
입으로 내뱉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글로 써도 같았습니다.

공부를 안해도 반에서 5등 안엔 꼭 들던 내가
끝에서 5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험을 치면 대체 글을 읽을 수가 없으니
그냥 아무 거나 찍고 말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턴 냄새도 제대로 맡을 수 없게 된 건지
모든 게 역했습니다.
다른 음식은 냄새가 나니 밥은 물에 말아
김치랑 먹는 게 전부였습니다.
또 어느 순간부턴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긴 건지
그나마 그렇게 먹은 것까지 다 게워 내기 시작했습니다.
살이 5kg 이상은 빠졌던 것 같습니다.

헤어졌다 다시 만난 걸로도 죄책감에
날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엄마에게
겨우 참을 수 있는 고통 정도로 괜히 엄살을 부리긴 싫어서
늘 아픈 걸 숨겨 왔습니다.

그러다 토하는 모습을 엄마가 첨 본 게
11월 31일 밤이었습니다.
그리고 12월 1일 새벽에 엄마는 자다 깨서
신물을 토하는 날 보고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고 합니다.
12월 1일 아침에 난 일어나지 못했고
독감이나 그것보다 더 심한 병에 걸린 것 같단 생각에
엄마는 날 시내의 큰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팔뚝보다 훨씬 더 굵은 주사를
꼬리뼈 부분에 찔러 넣어 척수를 뽑았고
첨 보는 이상한 통 속에 들어가 CT 촬영도 했습니다.
응급실에서 들은 검사 결과는 뇌출혈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2월 1일에 받은 첫 번째 수술은
뇌출혈 수술이었습니다.

자고 일어나 보니 내 얼굴은 수박만큼 크게 부어 있었고
머리엔 뇌에서부터 연결이 된 것처럼 보이는 대롱이 꽂혀서
피 주머니와 연결돼 있었습니다.

근데 수술을 해도 전혀 나아지지 않고
증상은 더 심해질 뿐이었습니다.
언어장애는 본격화된 건지 아예 머리에서
문장과 단어가 떠오르지조차 않았습니다.
모든 냄새에 다 구역질만 나서
물을 제외한 음식은 곁에도 두기 싫게 됐습니다.
몸엔 기력이 없어서 꼭 누군가가 부축해 줘야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눈은 뜨겁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머리는 수술하기 전에 가끔씩만 있던 가장 아픈 상태가
끊임없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선 퇴원하라고 집에서 요양하고 있으면
점차 나아질 거라고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집에 온 뒤로 보름이 지나자 15kg이 빠졌습니다.
물 냄새마저 싫어서 아무 것도 못 먹었습니다.
먹어 봐야 또 토할 거란 생각에
먹고 싶은 맘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보름을 집에서 보름을 지내면서
몸은 최악이 돼 있었습니다.

엄마는 누워서 움직일 수도 없게 된 날 다시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CT 촬영을 다른 각도로 다시 했는데
그땐 전엔 잡히지도 않던 종양이 머리에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이번엔 죽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어릴 적부터 죽는 걸 그다지 안 두려워 해서 그런지
무섭진 않았습니다.

그게 17살의 1월 2일이었습니다.
양성이라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성공할 확률이 희박하다고 할 정도의 상태였다고 합니다.

수술은 성공했습니다.
다른 세상이 시작됐습니다.
태어나서 첨인진 모르겠지만 철이 들곤 첨으로
머리가 안 아픈 게 이런 기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CT 촬영을 하면 덜 없애서 남은 부분이 보였는데
누군가가 선인장과 백년초를 먹어 치료했단 소리를 듣고
구해서 달여 먹었는데 효과가 있었는지
곧 그 남은 부분도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으면 하루에 마흔 번씩 주사를 투입하니
온몸이 구멍 투성이가 됐지만 몸은 전보다 몇 배나 개운했습니다.
시각과 청각과 후각과 소화기관까지 다 좋아졌습니다.
밥을 많이 먹어서 병원에 있던 한 달만에 20kg나 쪘습니다.
곧 원래의 몸이 됐습니다.
기력도 서서히 돌아오더니 고등학교를 입학할 무렵엔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복도를 걸으면 병신이라고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건 딱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모든 부분에 특별한 대우를 해 주시니
반 친구들이 그만큼 피해를 입는데 난 그게 무엇보다 싫었습니다.
결국은 1학기만 다니고 자퇴하게 됐지만
몸이 약해서는 아니었습니다.

18살이 됐을 땐 내가 다시 괜찮아진 줄로만 알았습니다.
틈틈이 병원에 찾아가 흉터를 보여 주고
항생제를 받아 먹긴 했지만 아파서는 아니었습니다.
검정고시를 보고 한번에 붙었습니다.
언어장애가 사라지고 공부도 다시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래서 바로 수능을 준비했습니다.

그날이 11월 10일이었던가?
수능까지 하루를 앞둔 새벽에 긴장감에 잠을 설치다
늦게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응급실에 있었습니다.
자다 말고 발작을 하고 숨을 제대로 못 쉬었다고 합니다.
병원에선 뇌 수술을 한 환자들이
후유증으로 겪기도 하는 증상이라고 했습니다.

그 증상이 그때부터 문제였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씩은 꼭 예고도 없이 몇 초만에 쓰러져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작을 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행하던 일을 지속하는 발작인데
예를 들어서 숨을 들이마시고 있으면 정신이 나갈 때까지
들이마시고 목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으면
정신이 나갈 때까지 오늘쪽으로 돌리는 식이었습니다.
어릴 적에 목이 돌아갔을 때랑 느낌은 아주 비슷한데
강도만 아주 세졌습니다.

가끔씩은 의식이 있는 상태로 발작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로 무서웠습니다.
몸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상태로
정신이 서서히 끊어지는 걸 느끼는데
이번에야말로 죽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매번 들었습니다.
아무리 죽는 걸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해도
생각이 정리조차 안되는 갑작스런 상황이 되면 무서웠습니다.

동성로 한 복판에서 쓰러진 뒤로 멀리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샤워하다 쓰러진 뒤로 화장실에서도 문을 열고 있어야 했습니다.
계단에서 쓰러지는 걸 형이 겨우 잡아 줬는데 그 증상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까지 빚어낼 수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의식도 없이 계단에서 뒤로 쓰러지면
어떻게 되는지 뻔하니까 말입니다.
그때부터 아무 데도 못 나가게 됐습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고 생각한 일인데
생각해 보니 이유는 있었습니다.

18살에 난 남들에겐 말하지 못할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해킹으로 기업의 돈을 교묘하게 훔치는 건데
안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됐습니다.
꽤 큰 돈을 손에 넣고 난 뒤부터가 두려움의 시작이었습니다.
나를 찾는 전화만 오면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고
맘이 편한 날이 잘 없었습니다.

반년이 넘게 이어진 두려움에 수능을 앞둔 긴장감까지 겹쳐서
발작이 일어났고 그 이후로도 그때처럼 죄를 지었을 때나
충격적인 일을 겪었을 때나 스스로를 속였을 때나
남에게 피해를 끼쳤을 때나 슬픈 일을 당했을 때나
깊게 고민하는 때면 꼭 그랬단 걸 알게 됐습니다.
소화가 안될 때나 열이 많은 음식이랑 술이나
박카스처럼 독한 성분의 음료수를 먹은 때를 제외하면
늘 그렇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적에 발작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신경외과에서 신경정신과로 옮겨 가서
일종의 정신병자로 분류되니
신검도 최하급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스무 살이 될 적까지 집과 병원만 오갔습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아무 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습니다.
몸무게는 곧 90kg이 됐습니다.
꽉 막힌 공간에서 늘 쓸쓸함만 키워 갔더니
증상은 더 심해져서 한 달에 너댓 번씩은 발작하고
어떤 땐 헛것을 보거나 무의식 중에 방뇨를 하기도 했습니다.
언어장애가 다시 오고
미각과 촉각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 본 환자들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난 어려서 빨리 나았지만
나이가 많아서 나처럼 빨리 낫지 못하는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다시 병원에 가서 또 수술하면 나도 그 사람들처럼
누워서 일어나기도 힘들어지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을 스스로 고쳐야겠단 결심이 선 게 그때였습니다.

병원에서 주는 약을 끊고 병원도 가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친척이 소개해 준 사람을 찾아가
소화기관과 관련된 치료를 받았습니다.
찜질기로 배를 따뜻하게 한다던가 식품으로 장을 강하게 하고
속에 찬 가스를 없애 준다던가 하는 식의 치료였습니다.

남을 속이지도 않고 남의 것을 탐하지도 않고
남을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된 게 다 나쁜 일을 해서 벌받는 거라고 생각하고
길에 작은 쓰레기 한 조각을 버리는 일도 없을 정도로
약간이라도 죄책감이 느껴질 일은 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늘 맘은 편한 상태로 유지하고 어려운 일은 쉽게 생각했습니다.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맘을 비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집과 가까운 곳을 하루에 몇 시간씩 걸었습니다.
몸에 안좋은 음식은 피하고
아주 가끔씩 입에 대던 술도 아예 안 먹었습니다.
먹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던 음식은 끊었습니다.
밥은 많이 먹지 않고 딱 배고프지 않을 만큼만 먹었습니다.
밥을 먹곤 적어도 여섯 시간은 활동한 뒤에 잤습니다.

그렇게 석 달만에 몸은 60kg까지 빠지고 유지됐습니다.
몸은 가벼워지고 배는 들어갔습니다.
아프면서 과하게 많이 나던 여드름이 한번에 사라지고
피부도 좋아졌습니다.
정신은 맑아지고 늘 좋은 생각만 들고 행복한 기운이 생겼습니다.
맘이 편하니 곧 발작도 두려워하지 않게 됐습니다.

발작은 한 달에 한번으로 줄더니
곧 두세 달에 한번으로 줄었습니다.

여유가 생기자 욕심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22살이 돼선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이랑 인터넷으로나마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관객들 앞에서 춤추며 뿜어내던 게 집에 갇혀 있으며
쌓이고 있으니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로 뿜어냈습니다.

인기가 생기고 팬이 생겼습니다.
첨으로 생긴 팬에게 isoamyl이란 이름을 지어 줬고
그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만났습니다.
병과 관련된 게 아닌 개인적인 친분으로
남을 만난 게 아픈 뒤론 첨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만에 행복한 데이트를 하고 돌아온
바로 그날부터 발작은 없어졌습니다.
언어장애나 감각기관의 이상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때가 22살 여름이었습니다.
22살 여름에 난 건강해졌습니다.

긴 글을 쓰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안해도 될 말까지
많이 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병이란 게 아주 작은 부분만 달라도
전혀 다른 치료법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증상을 다 적어야 참고하시기에 좋을 것 같아서
세세한 것까지 다 적었습니다.
느꼈던 바를 다 쓰는 게 어머니를 이해하시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것저것 많이 썼습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나비효과작가,essenti



- 출처 : 오늘의 유머







덧글

  • aa 2008/11/25 12:01 # 삭제 답글

    헐..
  • SoulbomB 2008/11/25 17:34 # 답글

    아 이 카툰보고 어떤 사고였나 싶었는데 저런 거였군요.

    정말 주위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저분 만화 항상 재밌게 보고 있는데 여길 통해서나마 힘내시라고 전해드리고 싶네요.
  • 지나가다 2008/11/25 19:19 # 삭제 답글

    기업의 큰 돈을 훔쳤다는건 양심고백이기는 하나
    밝혔으니 자백이고 그 기업에 가서 사과하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한결 더 건강해 지지 않을까요.
  • 가릉빈가 2008/11/26 02:17 #

    소울범//
    난정말 한테 하는 소리 맞죠?

    난정말//
    지나가다 님 처럼 예의를 지켜서 말씀 하신다면 누구라도 어떠한 이야기라도
    이야기 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에 반대 한다면 그것도 예의를 갖추어 반박을 하여야 겠죠.
  • chp 2008/11/26 04:47 # 삭제

    궁금해서 원본글 찾아가보니
    법적인 문제는 모두 해결하셨다고 하내요.

    댓글다는데 예의만 갖추어주시면 좋겠내요.
  • 제갈량민 2008/11/25 22:40 # 답글

    나비효과님 만화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아픈 과거가 있으셨군요...
    부디 힘내시고 지금처럼, 지금보다 더 행복해 지시길 바라요.
  • Nobody 2008/11/26 00:39 # 답글

    좋은 글입니다
  • 굽시니스트 2008/11/26 08:39 # 답글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 폭두백수 2008/11/26 10:14 # 답글


    나비효과 작가님께서 법적인 문제는 모두 해결하셨다고 합니다.
  • 仙人掌 2008/11/26 19:07 # 답글

    콩가루란 만화 작가분도 아픈 기억이 있으시던데.
    나비효과 작가분도 ㅠㅠ
  • 꼬꼬영 2009/02/03 09:34 # 삭제 답글

    힘내세요...언젠가는 그많던시련을 모두 보상받을 행복으로 살수있게될꺼에요...꼭~화이팅...작가님의 만화로 오늘도 하루하루를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박신영 2009/04/05 14:51 # 삭제 답글

    와 에센티님 잘생기셨네요 꼭 건강하세요^^
  • ....... 2009/04/29 14:29 # 삭제 답글

    http://hgc.saramin.co.kr/zboard/view.php?id=gworld0707&page=2&sn1=&divpage=26&sn=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68855

    보시고 오십쇼.
    박성열 저새끼 인간쓰래기입니다.
    인기를 이용해 성후행을 상습적으로 햇다는군요..

    하..진짜..씁슬하네요...
  • 붉은 나무 2009/04/30 20:57 # 답글

    오유에서 터진 에센티 사건을 보고..
    다시 예전에 봤던 이곳을 들렀습니다.

    다시 죽 읽어보며 많은걸 생각하게 되는군요

    많이 씁쓸합니다.
  • 폭두백수 2009/05/09 08:03 # 답글

    별로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열을내면서 이사람을 깍아내리고 싶지는 않네요.
    뭐 그냥 그런 사람이었을 뿐 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 뷰사휼 2009/06/05 11:40 # 삭제 답글

    읽어보면 씁쓸하네요
  • 538 2012/09/21 13:18 # 삭제 답글

    섹센티를 미화하는 글이라니 ㅎㅎㅎㅎㅎㅎㅎ
    인기 이용해서 미성년자 추행에 강간까지 한놈임
  • 2013/06/27 19:28 # 삭제 답글

    나비효과 작가는
    성희롱 혐의가 인정 되
    법원에서
    처벌 판정을 받았죠.

    비록
    성범죄자의 만화지만
    굉장히 기발하고 재미있습니다.
    단지
    귀하의 홈페이지에
    성범죄자의 작품이 올라와 있다는 점으로
    님까지 오해를 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밑의 주소는
    사건 관련 기사의 주소입니다.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129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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